본문 바로가기

과거 블로그___/쿨드링커 홍보대사

신광한의 <<企齋記異>>의 관한 小考


From.뉴시스  :  소설치고는 참 활자가 깨끗하지 않은가! 이래뵈도 금속활자본이다! 소설을 금속활자로
 찍다니~찍다니~ 찍다니~ 다 이유가 있는게외다.


#1.
고전하고는 거리를 좀 두고 있는 편이어서,고전에 대한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게다가 학부생 실력에 괜히 씨부려댔다간 크게 당하기에 더욱 조심한다. (특히 고전쪽은 어지간히 공부 안 하고는 접근하기가 힘들다. 사학 / 한문학 / 성리학 등 두루 알아야 이것들이 조각처럼 맞춰지기 때문이다.)
 꼴에 인문학 한다는 놈이 그것도 국어국문학 한다는 놈이 블로그에 관련된 글 하나 없이 가져가면 또 심심할 것 같아서 틈나는 대로 블로그에 관련된 정보를 좀 올리려고 한다.

#2.
이 소설이 16세기 쯤에 나온 소설이다. <<금오신화>>가 15세기에 나왔으니까 대충 1세기 쯤 뒤에 나온거다. 저자는 신광한이라고 하는 저명한 학자다. 여기서 포커스를 맞춰야 할 부분은 '저명한'이다. 왜냐하면 보통 소설들을 지은 양반들은 권력에서 심하게 멀리 멀어진 사람들이거나, 낙오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현직 관료가 소설을 짓는다는것은 그다지 좋게 보여지지 않았고(이것은 당대 유교사회에서 소설이 어떤 직위를 차지하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다.) 또 그렇게 하는 사람도 없었으니, 신광한 이라는 저명한 학자가 지은 소설이라는 특이성을 기재기이는 갖고 있다. 위에서 말한 금속활자 본도 이 사람이 그만한 권력이 있었으니까 가능한 것이었다.(물론 신광한이 살아있을 때 찍어낸것은 아닌걸로 알고 있다. 아마 이 후손들이 간행한것 같은데, 후손들의 권력도 상당했던것으로 알고 있다.)

#3.
특이한 것은 왜 양반이 소설을 썼느냐는 것이다. 자 여기에서 우리는 '소설'이 하나의 유흥거리라는게 단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1)한문으로 지어진 점 : 평민들은 읽을 수 없다 / 전기수(=강담사=대신 책 읽어주는 사람)는 당시에 존재하지 않았다  -->양반들이 읽는 소설이라는 점

2)무지막지한 '典故'의 사용 : 이 '典故'를 아는 사람은 재밌게 읽을 수 있지만, 모르는 사람은 이해를 못함
 --> 즉, 공부를 많이 한 양반들이 읽을 수 있다는 점

3)(살짝 오버) 장르문학의 분기이자, 판타지 문학의 가능성?
:<<서재야회록>>문방사우의 Avatar화 및 전체적인 작품의 환상계-현실계 넘나들기 때문
-->전고의 다양한 사용은 양반들만 웃을 수 있다 -->양반을 위한 장르문학??


 설사 글자를 아는 평민이라도, 전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설을 매끄럽게 읽어나갈 수가 없는데, 이것은 양반들을 위한 언어유희이기도 했다. 즉, 이것은 양반만을 위한 문학작품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3)에서 표현한것처럼 일종의 장르문학으로 분기해본것도(다소 오버스럽겠지만, 게다가 서양의 이론을 들여와서!!!) 그냥 이렇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을것이다 란느 생각을 해본거다. 이미 아바타화가 고전소설에서 이루어졌다니 놀랍지 않은가? 게다가 현실과 환상세계를 왔다갔다 하는 기재기이는 분명 판타지문학의 시초라 불러도 될만할 것이다..-_-(이 부분에 있어서는 공부를 더 해야 함은 물론이다. 태클 사절이염..전 그냥 이럴수도 있다는걸..)

#4.
읽어보면 재미난 소설이다. 혹자는 금오신화의 비해 문학적 연결고리가 떨어진다 하여, 연구를 많이 안 하는데, 장르문학이니, 판타지문학이니 하는 요즘 시대에 다시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는 소설이라 생각된다.